태음은 다시 피아노에 앉아 건반으로 오른손을 가져가 검지로 건반 하나를 눌렀다.
“미”
피아노를 한 번도 쳐보지 못한 사람이 피아노를 처음 쳤을 때의 표정과 자세 였다.
“파”
태음은 자신이 놀라운 실력으로 피아노를 연주 했다고 들어서인지 용기를 내여 양손으로 피아노의 건반을 눌렀다. 그의 행동은 피아노를 친다. 라고 하기엔 너무도 어설펐기 때문에 정말 누른다고 말하는 것이 맞았다. 잔뜩 기대를 했던 고시텔 사람들은 태음의 피아노 소리에 금방 실망을 하고 하나 둘씩 자리에서 일어나 자신들이 난장판으로 만들어 버린 식당을 치우기 시작했다.
태음은 자신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었는지를 알기 위해 더욱 열심히 피아노의 건반을 눌렀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보다 못한 총무 형이 태음에게 다가와 말했다.
“태음아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모르겠는데 피아논 치고 싶을 때 마음대로 칠 수 있으니까. 이제 그만 일어나 그라”
태음은 한 숨을 내쉬고는 자신에게 일어난 일들에 대해 의문을 품은 채 피아노 의자에서 일어나 사람들과 함께 식당을 치우기 시작했다.
식당 정리가 끝나고 모든 사람들이 자신들의 방으로 사라진 후에 태음은 다시 한 번 피아노에 앉아서 건반을 눌러 보았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하고 씻기 위해 샤워실로 향했다. 다른 사람들이 먼저 씻고 나가서 그런지 샤워실의 거울은 습기로 인해 뿌옇게 되어 있었고 태음은 왼 손으로 거울을 닦았다. 샤워기를 틀자 따뜻한 물이 비처럼 태음에게 쏟아졌고 닦았던 거울은 습기로 인해 다시 뿌옇게 되었다. 샴푸로 머리를 감기 시작했고 태음은 눈을 감았다. 샤워기의 물로 머리의 거품을 다 제거한 후 감았던 눈을 떴다. 아무 생각 없이 거울을 쳐다보았는데 거울에는 자신의 뒤쪽에 검은 물체 하나가 보였다. 태음은 너무 놀라 고개를 뒤쪽으로 돌렸고 그 곳에는 아침에 보았던 중년의 여성이 서 있었다.
옆에 걸려 있던 수건으로 자신의 몸을 가리며 태음이 소리쳤다.
“으악 놀래라 여기는 어떻게 들어 오셨어요?”
중년의 여성은 태음에게 다가와 어깨에 손을 올렸다. 그러자 환한 빛이 샤워 실을 감싸더니 잠시 후 태음은 옷을 입은 상태로 꽃이 핀 들판에 서 있었다. 갑작스런 일에 태음은 이리저리 두리 번 거리기 시작했고 멀리 하얀 피아노 한대와 거기 앉아 있는 한 사람이 보였다. 태음은 피아노 쪽으로 걸어갔고 피아노 의자에 앉아 있는 사람은 태음의 기척을 느꼈는지 의자에서 일어나 몸을 돌려 태음을 보았다. 그 사람은 아침에 보았던 중년 여성이었다.
“태음군 반가워.”
중년의 여성은 팔꿈치까지 오는 긴 검은 장갑을 낀 오른 손을 내밀어 태음에게 악수를 청했다.
“아침에 만난 분 인건 알겠는데 도대체 누구시죠?”
태음은 뒤로 물러서며 두려움과 의문이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내 이름은 이나주라고 전에 사진을 보여주며 말했던 것 같은데 벌써 잊어 버렸네”
“저에게 무슨 짓을 하신 거예요? 갑자기 피아노를 칠 수 있게 된 건 뭐고 다시 못 치게 된 건 또 뭔가요? 전 태어나서 피아노를 한 번도 쳐본 적이 없어요.”
당황스러워하는 태음의 표정이 재미있었는지 이나주는 팔꿈치까지 오는 긴 하얀 장갑을 낀 왼손으로 입을 가리고 웃다가 웃음을 멈추고 말했다.
“태음 군이 피아노를 한 번도 쳐본 적이 없다는 것은 사실과 달라요. 태음군은 피아노를 아주 잘 쳤었죠.”
이나주의 말에 태음의 눈은 놀라움으로 잠시 커졌지만 이내 의심의 눈으로 바뀌었다.
“기억이 나지 않는 것 같은데 태음군은 수준급의 실력을 가지고 있었어요. 태음군의 나이는 다섯 살 이었죠.”
태음은 화가 난 표정으로 말했다.
“제가 사고로 어렸을 때 기억을 잊어 버렸다고 사실이 아닌 이야기를 막하시면 안 되죠.”
“사실이에요. 태음군은 어머니에게 피아노를 배웠어요.”
태음의 부모님은 태음이 여섯 살 때 가족이 함께 봄나들이를 가다가 교통사고를 당했고 그 사고로 태음을 제외하고 부모님 두 분 모두 돌아가셨다. 친척이 아무도 없었기 때문에 태음은 시설에 맡겨졌고 그때 사고의 후유증으로 초등학교에 입학 할 때까지 말을 할 수 없었고 사고 이전의 기억을 잊어 버렸던 것이었다. 태음은 어머니라는 말에 어머니의 모습을 떠올려 보기 위해 애를 썼지만 얼굴을 떠올린 후 몸 전체의 모습을 떠올리려고 하자 갑자기 머리가 깨어질 듯이 아파오기 시작했고 오른 손으로 오른쪽 머리를 감싸며 소리쳤다.
“어머니는 어머니는.”
“아아악”
태음은 소리를 지르며 눈을 떴고 거기는 고시텔의 자신의 방이었다.
“꿈이었구나.
“
“씻으려고 수건을 가지러 왔다가 잠깐만 누워 있어야지 했는데 그대로 잠이 들었네”
태음은 일어나서 자신의 책상 서랍을 열었다. 그곳에는 긴 생머리에 단아한 모습을 한 어머니의 사진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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