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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은 다시 하얀색으로 바뀌었고 양 회장은 이야기를 계속했다.


“아씨의 피아노 소리를 듣는 것은 쓰러지시기 전 제 아버지의 마지막 소원이었습니다. 아버지께서는 생명 유지 장치로 겨우 살아계신 정도이시지만 가시는 길에 마지막 소원을 들어드리고 싶어요. "

 

"회장님께서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는 알겠습니다. 그런데 행방불명이 된 아씨의 피아노 소리를 제가 어떻게 회장님의 아버님께 들려 드릴 수 있을까요?"

 

“일기장에 아씨에 관한 이야기가 적혀 있는 곳이 있습니다”.

 

양 회장은 초록색 표지의 네 번째 일기장을 채성에게 건네며 말했다.

 

“책갈피가 꽂혀 있는 왼쪽 페이지를 읽어 보세요.


페이지 사이에는 금색 책갈피가 꽂혀 있었고 채성은 책갈피를 테이블에 내려놓은 후 일기를 읽기 시작했다.

 

1956년 5월 14일 맑음

 

길을 가다가 아씨의 모습을 보았다. 내 어릴 적 연모하던 아씨의 모습 그대로 였다. 나는 냉큼 달려가서 아씨 하고 불렀다.  아씨는 나를 못 알아보시는 눈치 였고 나는 어떻게든 아씨에게 나를 알리려 했다. 그 때 였다. 누군가 아씨를 부르는 소리가 났다.


“초향아 무슨 일이냐?”


“어머니 이 아저씨가 저보고 아씨래요.”


아씨가 어머니라고 부르는 곳으로 고개를 돌리니 고운 중년의 여성이 서 있었고 나는 그 여성에게 물었다.


“혹시 예전에 수원에 살지 않으셨습니까? 제가 돌쇠입니다.”


“뉘신지 모르겠사오나. 이 아이는 저의 여식으로 한양에서 태어나 한양을 떠나본 적이 없습니다. 사람을 잘못 보신 듯합니다.”


 

“제가 아는 분과 너무도 닮아 그러니 사진하나 박을 수 있게 해주실 수 있으신지요. 돈은 제가 다 내겠습니다. 두 분 같이 따로 한 장 더 박아 드리겠습니다. 부탁드립니다. 다른 사람에게 보이거나 그러지 않을 테니 제발 부탁드립니다.”


 

“저는 밖에서 기다리고 있을 테니 아무런 걱정 마시구요. 영수증을 주시면 찾을 때 심부름 온 것으로 해서 가져다 드리겠습니다.”


 

나는 고개를 숙이며 계속 부탁을 했다.


“어머니 이 아저씨께서 이렇게 부탁을 하시는데 우리 사진 한 장 박아요. 사진관을 지날 때 마다 사진한 장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었어요”

 

“좋습니다. 한 장 박도록 하지요.”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두 모녀는 간절한 부탁을 들어 주었고 나는 그렇게 그리던 아씨의 사진을 가질 수 있게 되었기에 뛸 듯이 기뻤다. 나는 안주머니에서 돈을 꺼내어 주었고 두 모녀는 사진관으로 들어갔다. 얼마의 시간이 지난 후 사진관에서 두 모녀는 나왔고 나에게 영수증을 주었다.

 

“이틀 뒤에 찾으러 오라고 하네요.”

 

“찾아서 어디로 가져다 드리면 될까요?”

 

“제가 그날 오후 한시에 사진관 근처에 서 있겠습니다. 그때 전해 주시면 됩니다. 그럼 저희는 이만 가보겠습니다.”

 

두 모녀가 걸어가는 뒷모습을 넋을 잃고 바라보다 갑자기 정신이 번쩍 들었다. 어디에 사는지 따라가 보면 알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나는 얼른 뛰어 가보았지만 두 모녀는 어디론가 사라진 후였다.

 

 

1956년 5월 16일 맑음

 

사진을 찾으려 사진관에 들렀을 때 사진관 주인은 어딜 가고 안주인이 있었다.

 

“사진을 찾으러 왔습니다.”

 

나는 영수증을 내밀었다.

 

안주인은 사진을 찾다가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이 영수증에 적힌 사진은 없는데요.”

 

“네? 이틀 전 두 부녀가 함께 와서 찍었다고 하던데요. 잘 찾아보세요.”

 

“창수 아버지 여기 좀 나와 봐요.”

 

“응 무슨 일이야?”

 

“손님이 사진 찾으러 오셨는데 없어요.”

 

사진을 찍었던 사진관 주인이 머리에 물을 묻힌 채 목에 수건을 하고 나왔다.

 

사진관 주인은 영수증을 보더니 말했다.

 

“아!  초향이 엄마랑 초향이 사진 찾으러 오셨구먼.”

 

“오늘 아침 이사 가기 전에 찾아 갔어요”

 

“이사를 가요! 어디로 간다고 하던가요?”

 

“몰라요 말을 안 했으니."

 

그 때 안주인이 말했다.

 

“초향이가 예배당에 있는 피아노를 그렇게 잘 쳤는데”

 

“예배당의 피아노요?”

 

 “그래요. 어디서 배웠는지 듣고 있으면 눈물이 났다니까.”

 

“다른 사진은 없습니까?”

 

“어디 보자. 사진관에 두려고 한 장 놔둔 것이 있을 텐데. 여기 있네”

 

 사진관 주인은 두 모녀가 함께 찍은 사진 한 장을 보여 주었다.

 

두 모녀가 환하게 웃고 있는 사진이었다.

 

“이 사진을 저에게 파시지요”

 

사진관 주인은 곤란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원칙이 다른 사람에게는 못 팔게 되어 있어요”

 

 나는 안주머니에서 사진 값보다 훨씬 많은 돈을 꺼내어 보이며 말했다.

 

“이만큼 드리겠습니다.”

 

사진관 주인은 많은 돈을 보자마자 눈이 커지며 말했다.

 

“손님이 하도 애원해서 파는 거요. 아무에게도 내가 팔았다고 하면 안 돼요”

 

“네 알겠습니다.”

 

나는 안주머니에 소중이 사진을 넣고 혹시 만날 수 있을까 해서 두 모녀가 걸어간 방향으로 가서 수소문 했지만 두 모녀를 아는 사람은 있으나 어디로 갔는지 아는 사람은 찾을 수가 없었다.

 

 

일기는 그렇게 끝났다. 채성은 다음 장으로 넘겨 읽어 보았지만 다음 장에는 일상에 관한 내용만이 적혀 있었다.

채성은 일기장을 내려놓은 후 양 회장을 바라보며 말했다.

 

“일기의 내용은 이렇게 끝나는데 이것만을 보고는 아무것도 알 수 없을 것 같은데요

 

양 회장은 미소를 띠며 남색 일기장을 펴서 건넸다. 펼쳐진 페이지 사이에는 금색 책갈피가 꽂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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