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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대는 눈을 뜨자마자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했지만 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안정제의 영향으로 몸을 움직이시려면 30분 정도 걸릴 것입니다.

 

흰 가운을 입은 검은 뿔 태 안경을 낀 검은 머리카락을 가진 여의사가 링거액의 투여속도를 조절하며 말했다. 정신을 차린 정대의 눈에는 링거액 바로 옆에 서 있는 이스마엘 베라의 모습이 보였다.

 

“큰일을 당할 뻔 하셨습니다.

 

“여기는 어디입니까?

 

왕궁의 지하 밀실입니다.

 

“다니엘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여기 있습니다.

 

정대가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리자 머리에 붕대를 감고 있는 다니엘의 모습이 보였다. 정대는 다니엘의 모습을 보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고 그 때 이스마엘 왕자가 이야기 했다.

 

“이스마엘 왕자가 정대의 왼쪽 옆에 의자에 앉으며 말했다.

 

“그 상황에서도 냉철한 판단으로 자신은 물론 다니엘의 목숨까지 구하다니 정말 대단하십니다.

 

사실은 이랬다. 요나단이 차에서 뛰어 내린 후 경사가 급한 비탈길을 내려가 목숨을 잃을 수 있는 순간에도 정대는 주위 상황을 파악하는 자신의 능력을 발휘하여 트럭을 급하게 왼쪽으로 커브를 틀었고 속도가 줄어드는 순간 오른쪽 트럭 창문을 깬 후 오른 손은 땅 밖으로 나와 있던 나무뿌리를 잡았고 왼손은 머리를 부딪쳐 기절해 있는 다니엘의 멱살을 잡았다. 트럭은 잠시 동안 같은 방향을 유지한 채 미끄러지듯 아래로 내려갔는데 그 때 트럭의 깨진 창문 사이로 허물을 벗듯이 빠져 나올 수 있었던 것이다.

 

“식사를 가져 왔습니다.

 

검은 양복에 선글라스를 낀 건장한 체격의 남자 두 사람이 쟁반에 스프를 가져와 정대와 다니엘에게 건넸다.

 

“식사를 마치신 후 두 사람을 따라 저에게 와주시기 바랍니다.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이스마엘 베라 왕자는 정대를 바라보고 말하고는 문을 열고 나갔다. 식사를 마치고 정대는 링거주사바늘을 뺀 후 침대 옆에 놓여 있던 양복으로 갈아입고 두 사람을 따라 나섰다. 정대가 안내된 방으로 들어가자 정 가운데 촛불 하나만 켜져 있었다. 촛불은 가까이 다가가야 서로의 얼굴을 알아볼 정도의 밝기여서 주위는 어두웠고 벽 쪽에 무엇이 있는지는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형님이 당신의 나라에 갔을 때 함께 했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어머니가 달랐었기에 저는 자의 반 타의 반으로 형을 멀리하고 있었고 되도록이면 만나지 않으려고 노력했었습니다. 그런데 형이 한국에서 돌아온 날 저를 불렀고 그 자리에서 저는 형의 미소를 보았습니다. 그리고 오랜만에 즐겁게 대화를 할 수 있었지요. 다음날 계획에 없던 여행을 함께 가자고 형이 제안을 했고 형의 미소 때문이었는지 저는 거절을 하지 못하고 함께 가게 되었습니다. 오랜만에 함께 차를 타고 가며 어린 시절이야기를 하던 중 사고가 났어요. 형과 제가 탔던 차가 도로 아래로 굴렀고 형은 그때 하늘나라로 갔습니다.  사고 당시 정신이 혼미한 상태에서 형이 저에게 어떤 말을 했었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기억이 나지 않았었죠. 그런데 화해의 날에 연주를 들으며 그때 형이 했던 말이 기억이 났습니다.”

 

“내 동생 이스마엘. 너와 내가 평범한 가정에서 태어났다면 피를 나눈 형제로서 행복하게 살았을 텐데 왕실 서고 33-140의 책을 읽어보렴. 그러면 모든 사실을 알게 될 꺼야. 함께 하지 못해서 미안하구나.

 

저는 서고에 있는 33-140의 책을 찾았습니다. 책의 제목은 형제 전쟁이었습니다. 책의 내용은

우리 왕실에서 일어났던 쌍둥이 왕자의 전쟁에 관한 내용이었지요. 저희 왕실에는 쌍둥이가 태어나면 둘째는 신분을 알지 못하게 하여 노예로 팔아버리게 되어 있습니다. 300년 전 왕실에 쌍둥이가 태어났고 아버지였던 가이바르 왕이 갑작스럽게 죽자 쌍둥이 왕자 중 동생인 아브넬이 형인 우리아를 죽이고 왕의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전쟁을 일으켰고 많은 희생 끝에 쌍둥이 형인 우리아가 전쟁에서 승리하여 왕의 자리에 올랐고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쌍둥이가 태어나면 동생의 모든 신분을 박탈하고 아무도 모르게 노예로 팔아버리도록 하였습니다. 300년 동안 다섯 번 쌍둥이가 태어났고 그때마다 둘째 왕자는 어디론가 노예로 팔려갔습니다. 100년 전 다이만 왕 시대 때 아사헬이라는 사람이 자신이 둘째 왕자라 주장하며 권리의 회복을 주장하였지만 결국은 다시 노예상인에게 넘겨져 비참한 죽음을 맞이했었습니다. 그런데 왕실에 다시 쌍둥이가 태어나는 일이 생겼습니다. 노예제도가 없어졌기 때문에 노예로 팔려가지는 않겠지만 자신의 권리를 박탈당하고 어딘 지도 모를 어둠 속에서 살아야만 하는 둘째 왕자를 가엽게 여긴 요만 왕과 아비가엘 왕비는 한 가지 계획을 세우게 됩니다. 왕비의 충직한 시녀였던 라이라를 불러 자초지종을 설명하였고 라이라는 다음날 왕을 유혹하였다는 죄명으로 왕궁에서 쫓겨나게 되었습니다. 1년쯤 지나서 라이라는 한 아기를 데리고 왕궁으로 찾아와 그 아기가 요만 왕의 핏줄이라고 말했고 DNA감정을 한 결과 요만 왕의 아들이라는 것이 판명되어 라이라는 왕의 두 번째 부인으로 라이라가 데려온 아기는 왕자로서 왕궁에서 살게 되었습니다. 그 아기가 두 번째 왕자인 저 이스마엘 베라 입니다.

 

이스마엘 왕자는 자리에서 일어나 창가로 향했고 창문에 달린 커튼을 오른손으로 들어 올리자 보름달의 빛이 이스마엘 왕자의 얼굴을 비추었는데 알 수 없는 슬픔이 그의 얼굴에 잠깐 나타났다가 금세 미소로 바뀌었고 다시 정대에 쪽으로 걸어왔다.

 

“이렇게 중요한 이야기를 저에게 하시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정대는 이스마엘 왕자가 세상에 알려지면 안 되는 중요한 비밀을 자신에게 이야기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했다.

 

“저는 대관식에서 이 비밀을 세상에 알리려고 합니다.

 

“그렇게 되면 왕의 자리는 셋째 왕자에게 돌아가게 되겠군요."

 

“아닙니다. 저의 대관식이 아닌 셋째 죠슈아의 대관식에서 이야기 할 것입니다.

 

“네 죠슈아 왕자의 대관식이요?

 

“저는 왕위 계승권을 거절할 생각입니다.

 

제가 조금 전에 말한 이야기들은 이미 장로들이 알고 있습니다. 제가 대관식에 나아가 왕관을 받자마자 바로 이 사실을 발표하려고 그들은 치밀하게 준비해오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바로 정대 당신을 통해서 말이지요.

 

정대는 자신에게 화살을 돌리는 듯한 이스마엘의 말에 당황하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저는 장로들을 만난 적도 없고 그런 일을 계획하고 있었다는 것도 몰랐습니다.

 

“아 제가 말을 잘못한 것 같군요. 지금의 이야기에는 설명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이스마엘이 고개를 돌려 오른 손을 들며 말했고 방 한편 벽 쪽 어두운 곳에서 한 사람이 걸어 나왔다.

그 사람은 셋째 왕자 죠슈아 베라였다. 정대가 이스마엘을 만나러 오기 전부터 죠수아 왕자는 비밀통로를 통해 방으로 들어와 어두운 벽 한편에 서있었던 것이었다.

 

“정대. 당신은 여러 나라의 첩보원 가운데서도 최고의 요원이라는 것은 각국의 정보기관이 이미 알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부국장이 아닌 첩보원으로서 당신이 조사한 결과는 그만큼 신뢰할 수 있다는 말이지요. 이스마엘 형이 방금 당신에게 말했던 것을 당신이 조사한 결과처럼 발표하게 된다면 그것은 진위 여부에 상관없이 이스마엘 형의 출신에 대한 의심으로 이어지고 그로 인해 형을 지지하던 세력은 힘을 잃게 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저는 그런 임무를 맡은 적이 없고 맡았다고 해도 그것을 섣부르게 공표할 생각이 없습니다."

 

죠슈아 왕자는 그런 정대를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고 그때까지 정대는 이스마엘 왕자가 자신을 불러 놓고 이런 이야기를 하는 이유를 알 수 가 없었는데 갑자기 머릿속을 지나가는 생각이 있었다. 정대는 무엇인가 떠오른 듯 말했다.

 

“아 그랬군요. 제가 정보 제공자라는 사실이 중요한 것이니 그것을 제가 발표할 필요는 없죠."

 

“네 맞습니다.

 

모든 의문이 풀린 듯 정대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하기 시작했다.

 

“라이베라 공화국에서 첩보원으로 활동하던 사람이 이스마엘 왕자의 비밀을 알게 되고 그것을 자국에 보고하기 전에 사고로 죽는다. 죽은 사체에서 보고서가 발견 되고 그 사실을 알게 된 장로회에서 공표한다는 시나리오였군요."

 

“요나단의 아이들을 납치한 그들이 바랬던 것은 살아 있는 당신이 아니라 죽은 당신이었던 것입니다. 장로들은 당신을 라이베라로 오게 하기 위해 어떤 사람과 밀약을 맺습니다. 그 사람은 제가 왕이 된 이후 자신들에게 돌아올 이익을 위해 당신을 첩보원 신분으로 이곳으로 보낸 것이지요.

 

“하지만 제가 살아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면 그들은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행동할 텐데요.

당신의 행적을 유심히 살펴보고 있던 우리가 비밀리에 두 사람의 외모와 비슷한 당일 사망한 두 사람을 불에 탄 시체로 만들어 근처 바다에 던져 놓았습니다.”

 

죠수아의 말을 듣고 있던 정대는 한 사람 머릿속에 떠오르는 사람의 이름을 말했다.

 

“김대진”

 

“네 맞습니다. 김대진 그는 당신의 나라의 산업통상부 장관이지요.

 

김대진은 라이베라 공화국 맺었던 에너지 협약을 조금 더 한국에 유리한쪽으로 바꾼 후 그것을 자신의 업적으로 선전하여 차기 대권을 노리고자 했기에 이런 일을 벌였던 것이었다.

 

그리고 또한 가지 장로들이 바로 형과 저를 함께 살해하려고 그날의 사고를 꾸민 것도 화해의 날 이후로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대관식 전에 동생과 만나 이 이야기를 매듭짓고 싶었던 것입니다. 대관식은 1주일 후에 있을 예정입니다.”

정대는 대관식 당일 아침까지 지하 밀실에서 다니엘과 함께 지냈다. 대관식 당일 정대는 대관식장으로 향했는데 그의 안주머니에는 대관식 초대장이 들어 있었다. 대관식 장으로 걸어가던 중 상점 밖에 걸린 거울에 비친 정대의 모습은 80세쯤 되어 보이는 노인의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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